베네수엘라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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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A VENEZUELA

“비바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는 승리한다)”라는 구호와 함께 우고 차베스는 2012년 대선에서 네 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 승리는 6년 뒤 베네수엘라에 가난, 실업, 굶주림, 폭력, 범죄, 몰락과 수많은 사람들의 국외 탈출로 이어 졌다. 베네수엘라 인구  3천2백만 명중 5백만 명이 탈출하였으며, 이중 많은 사람들이  이웃 나라인 콜롬비아로 끊임없이 탈출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2018년 9월호).

베네수엘라 경제는 2014년부터 반으로 감소하였는데 이는 비전쟁 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이 줄어든 수치이다. 수출품의 90%가 석유이며 정부의 외국 채무는 수출액의 5배가 되었다. 2017년에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나 일 년 뒤 물품 가격이 1.2백만 배 인상되었다고 야당소속의 국회의장이 발표하였다. 정부는 물가 인상에 관한 통계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임금 구매력이 이처럼 떨어지면서 사람들의 소비는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기업의 생산, 서비스 또한 급격히 줄어들어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하였다. 차베스 대통령 이전에 국내에서생산하였던 소비품들은 외국에서 수입하는 편이 저비용이므로 이러한 소비품들의 생산이 멈추어 모든 공산품의 공급 부족이 일어났다. 병원에는 약과 주사가 없으며, 가게는 몇 안되는 물품을 카드로 판매하고 있어  국민들은 굶주리고 있다. 국민들은 2015년에  평균적으로 8.5kg의 살이 빠졌다. (이코노미스트, 2017년 4월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매장하고 있고, 5년 전에 라틴 아메리카의 본보기 민주국가였으며, 영국만큼 부유했던 이 나라가 어떻게 이처럼 망하게 되었는가?

시작: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특유의 사회주의

국립사관학교 출신이며, 열정적이고, 격렬한 어투를 구사하는 우고 차베스는 1992년 반란 활동에 참여하여 감옥에 수감 된다.감옥 출소 후에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국가들을 방문하고, 쿠바에 있을 당시 피델 카스트로와 친분을 쌓았다. 그리고 곧 “제5 공화국 운동” 이라는 당을 세우고, 차베스는 1998년 대선에 출마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덩치가 크고 군복을 입은 차베스를 반란군 활동 당시 텔레비전에서  보고 그의 불같은 말을 듣고 그를 지지하게 된다.

대선 당시 차베스는 사회 여러 방면에서 개혁 할 것을 혁명적이고 불같은 그의 말들로 약속하며 빈부 격차가 심한  베네수엘라의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국민 투표율 63%인  대선에서 54%의 지지를 받으며 승리를 한다.

정부 권력을 가진 뒤에 국회 개혁을 통하여 자신의 사람들로 국회를 채웠다. 대통령은 임기 5년제이며, 두번의  대선 후에야 재선이 가능한 헌법규정을  임기 6년으로 고치고, 몇 번이든 재선할 수 있게 바꿨다. 대법원의 부패한 권력들을 자신의 변호인단으로 바꾸고 법률 규정, 준수, 사법부의 권한 또한 손 안에 넣게 되었다.

차베스 대통령 임기동안 석유 가격은 배럴당 100불에 이르렀고, 드러난 자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검은 금(석유)을 보유한 이 국가의 금고는 마법같이 가득 차고 있었다.

차베스는 선거 공약에 따라 쿠바식 베네수엘라 사회주의를 세우는 일을 시작하였다. 사회 복지를 무료화하였고, 시민들에게 음식, 돈을 건네주었다. 국가 전체에  15,726개의 음식 제공센터를 설립하였다. 많은 수의 국영기업을 설립하였고, 경제 다양화와 급진화 (radicalization) 목적으로 석유, 은행, 시멘트, 건강, 식품 등 관련 민간사업들을 국영화하였다. ExxonMobil, ConocoPhilips 등의 외국업체들도 자진 철수하였다.

그러나 석유 가격은 곧 하락하였고, 그동안 아무런 부를 축적하지 못한 베네수엘라 정부는 사회 복지를 끊임없이 공급하기 위해 외국에 정부 채권을 발행하였고, 국가 부채는 늘어났다. 또한 통화 통제 (currency control)를 하고, 높은 환율을 설정하여 암시장이 성행하였고, 국가통화는 가치를 잃게 되었다.

차베스는 텔레비전 (“Hola Presidente” 프로그램)에 몇 시간씩 출현하여 아무 말이나 하였고, 그의 생각과 활동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비판하였고”, 몇 몇 총리와 고위 공직자들을 프로그램 촬영 중에 면직하였다.

쿠바에서 암 투병 중이던 차베스는 2013년 사망한다. 그의 유서를 바탕으로 그의 최측근인 부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가 대통령 직무를 맡게 되었다.

전개: 경제와 인간성의 동시 하락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버스 운전기사 출신이었던 마두로는 2개월 뒤 특별 대선에서  1%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에게는 차베스의 통치 능력도 없었고, 더군다나 석유 가격은 40달러까지 내려가며 국가 상황은 더욱 나빠 졌다. 정부는 부패로 썩어 갔으며, 부와 재산을 몰수당한 기업들에게는 희망조차 없어졌다.

공무원들의 월급 지급을 위해 종이 통화를 찍어 내면서 통화 가치는 급격히 내려갔다. 가난은 더욱 확대되었다. 2014년에는 정부 정책을 비난하며 국민들이 전국적으로 매일 시위를 하였다. 시위 참가자와 경찰, 군 간의 마찰 때문에 43명이 생명을 잃었다. 2015년 총선에서 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2016년 국민 투표를 통해 마두로 대통령의 퇴임을 결정한다.

마두로는 차베스 정권부터 대법원, 선거 관리 위원회, 군을 통제하던 대통령 직권으로 대법원을 통하여 국회를 무력화하였고 급여 제공조차 중지하였다. 대신에 베네수엘라 주 의회 (The Constituent Assembly of Venezuela)를 설립하고 2017년 6월에 치루어진 선거를 통해 대부분의 사람을 자신의 측근으로 포진하였다. 2018년 5월에 치러진 대선에서 마두라는 재선에 성공한다.

서방 국가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베네수엘라에서 치러진 위의 두 선거를 부정하고, 몇 나라들은 마두로와 정부 관리들의 비자발급을 정지하고 자신들 나라에 있는 이들의 재산에 대하여 동결조치를 내린다.

베네수엘라 국내 상황은 더욱 나빠졌으며 범죄, 도둑은 더욱 확산되었다. 2012년에는 10만 명당 사망률 73명에서 2년 뒤에는 82명으로 증가하였다 (Venezuela Violence observatory, NGO). 식량은 더욱 고갈되었으며 국민들은 배고픔 대신 탈출을 선택한다. 이 탈출은 시리아에서의 탈출보다 규모가 더 컸다. 베네수엘라에서는 경제와 인간성 하락이 동시에 일어났다. 마두로는 이는 경제적 하락이 아니라 미국과 자본주의 국가들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적인 전쟁”이라고  선언한다.

자신을 무장한 독재자의 통치에는 국민들이 국내에 남는지, 탈출하는지, 굶는지, 죽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졌다.

광산 자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대중 행정이 불분명하며, 뇌물에 찌든 정부는 더욱 커지며 시장경제를 없앤 베네수엘라의 “성공”은 위와 같다.

정부를 국민이 선택하며, 감독하는 능력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이 실행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인가?

2019.01.09

Trans. by A.Del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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